이 글을 쓰면서 나의 머리 속에는 몇가지 수사(修辭) 또는 낱말들이 오가고 있다. 우선 원초적 내재율 이라는 말부터가 그 하나요, 그 밖에도 흔적 이라든가 기(氣) 또는 집적된 시간성 , 미분화(未分化)된 형태 , 중화된 색조 , 표면과 질감 , 내부공간의 확산 등등이 그것이다. 그리고 이와 같은 표현들은 다름아닌 이정은 자신이 1990년에 작성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쓰여진 글귀들이다. 그 뿐만이 아니다. 그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 대해 깨우치는 바가 많았고, 이는 다시 말해서 이정은이 그녀의 작품, 그 회화 세계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.
[ … ] 이정은의 근작('93~'94)을 두고 볼 때 거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. 즉 공간성의 문제가 그것이다. 그리고 만일 그녀의 회화를 두고 자연.내재율 이라는 표제가 허용된다면 이는 바로 그 공간성과 관련해서이다. 이정은에게 있어 원초적 내재율 이라고 했을 때, 그것은 곧 자연 (여기에서 자연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대문자의 자연 을 가리킨다.) 의 그것을 의미한다. 그리고 그것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 생성적 공간의 세계이다. [ … ]
그 생성적 공간,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내재적 자연 공간을 의미한다. 그리고 거의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화면은 그 속에 무한(無限)과 허(虛)를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필경은 자연의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. 물론 그 이미지는 자연의 일부이거나 그 단면도 아닐뿐더러 이정은의 회화에 있어서는 조형성이라든가 표현성이라는 것이 다같이 배제되어 있느 것이다. 그리고 표백되어가는 공간과도 같은 그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, 그것이 곧 자연 의 내재율의 세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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